제목    기관총을 든 신부님! .
  글쓴이 기관총을 든 신부님! 글쓴날 2003-10-30 14:38:44 조회 14260

기관총을 든 신부님! .

나치괴뢰정부의 학살에 동조한 신부들, 그리고 전범들이 갈취한 금을
보관해
온 바티칸의 ‘자비’ 


사진/ 2차대전 당시 나치의 학살은 알려졌지만 바티칸의 역할은 의심으로만

남아있다. 히틀러와 만나는 바티칸 추기경. 


‘히틀러의 600만 유대인학살’로 연상되는 2차대전의 역사는 냉전시대
동서의 
대립으로 많은 사실들이 은폐돼왔다. 전시하에서 독일 나치와 이탈리아
무솔
리니의 만행은 잘 알려졌으나 바티칸의 역할은 계속 의구심으로 남아 있었
다. 그러나 1999년 11월 2차대전중 나치학살수용소의 생존자들과
가족친지들
이 미국 샌프란시스코법원에 집단으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2차대전중
바티칸
의 역할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전범재판서 유죄판결 받은 성직자들 


이들 28명의 소송인들은 2차대전 당시 크로아티아에 거주하던 세르비아인,
유
대인, 우크라이나인 등 소수의 생존자들과 피해자들의 가족·친지들로서
2차대
전중 크로아티아 나치에 의해 탈취된 금이 바티칸은행 등 다른 곳으로
옮겨
져 보관돼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바티칸은행, 프란시스카수도회,
스위스국
립은행, 크로아티아해방운동 등을 상대로 탈취된 금의 반환을 위한 법적인
투
쟁을 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도 계속 진행중인 소송에서 변호사들은 재판에

필요한 2차대전중의 문서들, 특히 미국중앙정보국(CIA)과 미군정보국에서
보
관하고 있는 비밀문서들을 해제할 것을 요청하여 몇 가지의 비밀문서들을
넘
겨받았으며 바티칸에도 비밀문서를 해제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바티칸은

75년 뒤에 보관된 문서들을 해제한다는 관례를 들어 거절했다. 현재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조나산 레비 변호사는 재판을 위해 정확한 바티칸은행의
소유
자를 밝히라는 요구를 바티칸당국에 한 바 있으나 이것마저도 거부했다고
말
했다. 


사진/ 크로아티아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들과 나치지도자들. 오른쪽에서 두
번
째가 스테피나츠 대주교다. 


그러나 2차대전 뒤 나치전범들을 재판에 회부하면서 공개된 문서들,
미군정보
국과 국무성에서 해제된 문서들은 바티칸과 크로아티아 우스타쉬 정부와의

관계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면서

크로아티아에서는 나치괴뢰정부인 우스타쉬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무엇보다
도 우스타쉬 정부와 크로아티아 가톨릭교회의 관계가 무척이나 긴밀했다는

것은 2차대전이 끝난 뒤 여섯명의 가톨릭교회 고위성직자들이
유고슬라비아
법정에서 나치전범으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에서 잘 나타나고
있
다. 전범으로 기소된 드라구틴 캄버 신부는 300명 가까이 되는 세르비아
사람
들을 죽일 것을 명령했고 슬로베니아의 그레고리 로즈만 주교는
나치협력자
로 수배되었고 사라예보의 이반 사릭 주교는 ‘세르비아인들의
교수형집행인’
으로 유명했다. 또한 수십만의 세르비아인들을 고문하고 학살하여 독일
나치
들조차 전율했던 야세노바츠수용소의 최고책임자가 프란시스카수도회의 수
도승이었던 밀로슬라브 마지스토로비치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세상에 충격을

주었다. 

특히 원고쪽 변호인단이 추적해오던 한 프란시스카회 신부에 관한 문서가
지
난주 미군정보국에 의해 공개되면서 그동안 베일에 쌓였던 사실들이
만천하
에 드러났다. 조나산 레비 변호사는 크루노슬브 드라가노비츠 신부를
바티칸
은행으로 넘어간 금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핵심인물로 간주하여 그에
관한 
문서를 CIA와 미군정보국에 요구한 바 있다. 드라가노비츠 신부는 전시하의

크로아티아에서 수십만의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종전

뒤에는 아돌프 아이히만과 클라우스 바비 등을 포함한 수천명의
나치전범들
을 남미의 아르헨티나로 탈출시켰던 소위 ‘ratline’으로 불리는 탈출로를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탈출로를 통해 우스타쉬 정부의 모든 지도자들이
전
범사냥에서 자유로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6월4일에 공개된 문서에
따
르면 드라가노비츠 신부는 수많은 정보국을 위해 일해온 스파이로
밝혀졌는
데 특히 CIA와 미군정보국이 그가 나치활동의 과거가 있고 세르비아인들을

증오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단지 과격한 반공주의자란 이유 때문에 그를
채
용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전범 대주교 성인이 되다? 


사진/ 교황이 되기 전 바티칸 외무부 장관직을 맡고 있던 피오 7세(사진
가운
데)와 독일 나치의 외교관들. 


우스타시 정부는 1941년 독일 나치가 크로아티아에 세운 나치괴뢰정부로서

극단적 민족주의와 가톨릭주의를 이념으로 하면서 다른 민족과 종교에 대한

혹독한 박해로 악명을 떨쳤다. 2차대전 전부터 우스타쉬그룹은 유럽에서
가
장 잘 조직된 테러집단으로 유명했는데, 1934년에 일어난 유고슬라비아 왕
알
렉산더 2세의 암살과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었던 루이 바투의 암살은
우스타쉬
그룹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정권을 잡은 뒤인 1941년과
1945년 
사이에 약 80만의 세르비아인들과 약 6만의 유대인들, 수천명의 집시들을
학
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나치들이 독가스로 집단학살하는 방법을
사용
한 반면 이들은 주로 칼과 망치 등의 원시적인 도구를 썼다. 우스타쉬
정부는 
정권을 잡자마자 ‘가톨릭왕국 크로아티아’라는 기치를 내세우면서
‘삼분의 일 
학살, 삼분의 일 추방, 나머지 삼분의 일 개종’이라는 잔인한 정책을
실행했
다. 이들은 인종차별을 공개적으로 시행하는 법을 제정하여 다른 민족들의
학
교와 교회를 강제로 폐쇄했으며 유대인들은 다윗의 별표시를 한 완장을,
세르
비아인들은 정교회 표시인 ‘P’가 적힌 완장을, 집시들은 노란 완장을
강제로 
두르게 했다. 

당시 우스타쉬 정부가 바티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
실이다. 우스타쉬 정부의 우두머리였던 안테 파블리츠와
자그레브(크로아티
아의 수도)의 대주교였던 스테피나츠는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
다. 1941년 5월에 우스타쉬 괴뢰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대주교 스테피나츠는
파
블리츠에게 축하를 보내고 축하연을 베풀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
스테피
나츠는 파블리츠가 무솔리니와의 조약에 서명하기 위해 로마로 가는 길에
교
황이었던 피오 7세와의 개인적인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대주교
스테피나츠
는 전국의 크로아티아 신부들에게 목회서신을 돌려서 새로 탄생한 우스타쉬

국가를 지지할 것을 명령하고 자신도 우스타쉬 정부의 종교개종위원회
우두
머리로 활동했다. 당시 가톨릭 신부들에 의한 세르비아인(정교회 신자들)의

학살은 존 콘웰이 쓴 <히틀러의 교황>이란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존 콘웰은

학살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다름 아닌 신부들, 특히 프란시스카수도회의
신부
들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언제나 기관총을 지니고 다닌 것으로
유명했던 
보지달 브랄로 신부는 알피파신 모스트에서 약 180명의 세르비아인들을
학살
한 다음에 시체들을 돌면서 춤을 췄다”고 존 콘웰은 증언했다. 

2차대전 뒤 독일전범들 대부분이 뉘른버그법정에 선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스
타쉬 정권의 지도자들 대부분은 법망을 빠져나갔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세르
비아인들, 유대인들과 집시들을 학살한 뒤 갈취한 금과 귀중품을
탈출하면서 
함께 가져간 것으로 밝혀졌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바티칸이 독일과
크로아티
아에서 온 나치전범들을 바티칸의 성과 수도원 등지에 보호해줬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당시 나치전범들이 바티칸은행을 통해 아르헨티나 등
각 
나라로 돈을 보냈다고 변호사 조나산 레비는 주장한다. 우스타쉬 정권의
우두
머리였던 ‘발칸의 도살꾼’으로 알려진 파블리츠는 1945∼47년까지
바티칸으로
부터 국가지도자의 대우를 받으며 머물다가 이후 아르헨티나로 탈출하여
후
안 페론(에비타의 에바 페론의 남편)의 정치고문으로 일했다. 수십만을
학살
했던 학살수용소들의 책임을 맡았던 크로아티아의 아르투코비츠는 30년간
미
국 캘리포니아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 죽었으며 루부릭은 스페인에서
호
화별장들을 구입하고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사업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다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나치정권을
지원하
고 세르비아 정교도들을 학살하는 데 앞장섰던 대주교 스테피나츠는
전범으
로 체포되어 유고슬라비아감옥에서 몇년간 복역한 뒤 바티칸의 구명운동으
로 석방되었다. 그가 죽은 뒤 1998년 10월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크
로아티아에서 성인으로 추대되는 마지막 절차인 시복식이 치러져 세상을
놀
라게 했다. 


입다문 바티칸, 사과가 무슨 소용 


2차대전중 나치독일에 협력했던 스위스은행, 스웨덴은행, 포르투갈은행
등은 
피해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문서를 공개하고 보관된 금을 되돌려줄
것이라
고 밝힌 바 있고 독일 정부도 희생자들에게 수십억불을 배상하기로 약속했
다. 그러나 바티칸당국은 오히려 독립국가에 대한 주권침해라는 이유를
내세
워 미국 정부에 재판을 중단시킬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원고쪽 변호사인
조나
산 레비는 필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탄식하고 있다. “교황의
변호
사들이 모두 이 문제를 건드리는 데 반대하는데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유
대인들과 정교도들에게 어떻게 사과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 youngsig at 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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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교황들의 애첩과 사생아들이 부지기수라는 걸 모르세됴? 


잘모르면 카톨릭 백과사전을 읽어 보세요.

수녀원 강단을 수리보수 공사하는 데 유아해골이 수백 개가 나온
사실이 타임즈매거진에 보도된 거 모르세요. 어떻게 임신했을까요?
어떤 천주교 다니는 똘아이는 성령이 임신시켜 애를 밴거라나?
그럼 왜 죽여서 강단 바루바닥 밑에다 숨겨 놓았을까요?

신부,수녀들은 말이 독신이지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술마시고 담배피우며 
아동 성추행, 구룹섹스 등 별짓 다 해여. 
얼마 전에는 캐나다에 이민가서 살고 있는 모녀를 2년간 번갈아가며 성추한

파견 주임신부가 캐나다에서 쫓겨 났다고 현지 방송과 언론에 보도 되어
한국
인을 개망신시켜 교포들이 항의 하는 사태가 벌어졌었어요. 천주교역사를
보
면 그런 건 빙산에 일각이에여.
솔직히 말해서 걔들이 성불구자가 아니라면...하고 싶겠져?.. ㅋㅋㅋ 
결혼을 왜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기야 가정이 없으면 보다 자유로워
별짓 
다 할수 있고,, 겉으로는 성스러운 척하여 존경도 받고..실제로
유부녀,과부
들 신부 꼬시려고 줄서고 있어요. 수녀는 별미래여.

증말 위선자 천국이 천주교예요! 

오죽하면 그런 천주교를 발로 차고 나온 신부수녀들이 위선자로 살기싫다며

종교개혁한 것이 개신교를 탄생시킨 거예여, . 결혼도 하구여.
저도 성당 다니다가 실상을 알고 개신교에 다니고 있어요. 근데여 요즈음은

가짜 목사가 있어요.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같이 행동하니까,뒷조사를
해봐
야 해요.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그럼 안녕



[속보]악질삼성의 1인시위에 대한 폭력행사 규탄한다!
청와대 못올리게하는글4-부산대토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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